'2009/06'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09/06/29 인도네시아는 페이스북? by 망명객
  2. 2009/06/29 <8> 전자 정의 (Electronic Frontier Justice) by 망명객
  3. 2009/06/29 <7> 박애 자본주의 by 망명객
  4. 2009/06/28 냉동삼겹살 (4) by 망명객
  5. 2009/06/27 더위 속 무덤 보다 못한 사람 이야기 by 망명객
  6. 2009/06/26 잘 가요, 마이클! (4) by 망명객
  7. 2009/06/24 후배에게 빌붙기... (2) by 망명객
  8. 2009/06/23 이주민 블로그 놀이 경과, 다음은 메타블로그 차례... (2) by 망명객
  9. 2009/06/19 1997-2009년을 관통하는 기억 : '盧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통보에 대한 단상 (6) by 망명객
  10. 2009/06/19 면접 by 망명객
개발자를 위한 Open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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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를 위한 오픈소셜 PT자료.
개발자는 아니지만, 국내 거주 이주민 컴퓨터 활용 교육을 위한 잡생각(응?)들을 떠올리게 하는 단초로 업어옴.
좋은 자료 공유해주신 정진호 님께 감사를...
기술적 관점에서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는다는 단초가 사회적 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에 대해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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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주 이주민 대상 컴퓨터 활용 교육은 오피스 중심의 직업교육을 넘어 실질적인 소통 채널 확보라는 측면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주민들이 지식인을 적극 활용할 정도로 한국어 숙련도가 높진 않지만, 자국어 콘텐츠 이용이나 생산 면에선 여타 유저들과 별반 다를 게 없죠.

컴퓨터 활용 교육에서 제 역할은 이주민들이 컴퓨터 활용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겁니다.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취득하라는 게 주요 골자죠. 물론 어려움도 따릅니다. 컴퓨터 교육장의 공용 컴퓨터를 이용하기에 이주민들의 자국어 텍스트 입력이 원할치 않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언어적 이득이 따릅니다. 인도네시아어의 글자 체계는 영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사용하기 때문이죠(아, 관찰의 결과입니다. 제 관찰이 틀릴 수도 있죠.)

제가 가르치는 교육생들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몽골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메일과 블로그 계정을 만들고 디지털 사진을 주고받거나 다운받아 블로그에 게시하는 것 등을 주로 가르쳤습니다. 아, 댓글을 달고 트랙백을 거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블로그를 활용한 컴퓨터 교육 과정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이주민들의 말문을 틀어주는 겁니다. 단순히 웹 상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넘어, 삶의 기록이자 이주민들의 유의미한 발언 창구로, 최종적으론 국내 에스닉 미디어의 단초로서 블로그의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1회의 짧은 교육만으론 이주민들의 말문을 여는 게 참 힘드네요. 여기서 컴퓨터 교육이 기술 교육을 넘어 문화예술교육과의 접합이 이뤄져야 합니다. --;;;;;

사실 교육 초기에 함께 자원봉사 활동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주민 교육생들에겐 블로그보다 미니홈피가 필요하단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적극적으로 가입이 비교적 편한 해외 SNS서비스들을 둘러본 적이 있죠.

사실 국내 에스닉 미디어의 단초로서 이주민들의 블로그를 바라보는 건 극히 국내적 시각일 수도 있습니다. 이주민들이 컴퓨터 교육을 희망하는 건, 개인적 발전도 있겠지만,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손쉽게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에 기반하는 것 같습니다(물론 이것 또한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제 개인적 관찰 결과입니다).






얼마 전부터 교육 시간에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페이스북을 조심스레 다루기 시작하더군요. 저야 뭐 인도네시아에서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고 있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았을 뿐입니다. 정진호님 블로그 포스팅 내용을 보니,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군요. 위 그래프로 보자면 인도네시아 페이스북 사용자는 6백만으로서 인구대비 3%라는 소리죠? 인구대비 인터넷 이용 인구가 10% 정도(2008년 통계... 출처는 까먹었음)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거 아닐깝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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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저희 교육생들이 제게 페이스북을 권할 날이 오겠네요.
이래저래 각종 인터넷 채널들을 열어둬야 한다는 건데...
갑자기 귀차니즘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번 포스팅은 잡다구리한 중언과, 덜 성숙한 생각들의 나열... --;;;;;; 아놔~ 공부해야지~~!!!






Posted by 망명객
하버드 대학 대학생의 데뷔작 소설이 블로고스피어 내에서 표절로 밝혀진 사건을 두고 뉴욕타임스가 '변경의 정의 Frontier Justice'가 실현된 사례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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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상의 엄청난 자원이 도용의 욕구를 강화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 자원들 덕분에 표절을 감지해 내는 일도 훨씬 더 쉬워졌다. 이제 교사들은 과제물의 전거나 출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구글 검색을 활용한다. 학생들이 낸 작문이 기대 이상이어서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임의로 구절을 골라 웹상에서 검색하는 것이다. 또한 정교한 소프트웨어 패키지와 검색 데이터베이스가 문학의 무단 도용 행위를 적발해 내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 (중략)--------- 그러나 최고의 탐지 시스템은 웹 이용자들의 경고다, 웹은 실체가 없는 소문과 적의가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표절자와 도용인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훌륭한 무대이기도 하다. --------- (중략)--------- 웹의 협력 윤리는 일종의 도둑질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불법의 수혜자들은 자신을 보안관으로 내세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 미래 시민 개념 사전, 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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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1.

축제 연구자인 모 박사는 모 매체에 기고했던 자신의 글이 버젓이 레포트 거래 사이트에서 상품으로 올라가 있단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저장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미처 보관하지 못하던 글이라 반가운 마음에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건 모 박사. 업체 측에선 아무리 저자 본인이더라도 해당 아티클을 공짜로 제공할 수 없으며, 아울러 업체 측에 그 글을 넘긴 사람도 밝힐 수 없다고 응답했단다. 결국 자신의 아티클을 웹 상에서 결제한 뒤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는 모 박사의 탄식은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 문제인가?

상황2.

특정 키워드로 검색을 돌릴 경우 가장 많이 잡히는 정보들은 레포트 거래 사이트들이다. 손쉽게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 대학생들과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제공자들이 협잡한 이들 사이트들에 대해선 그닥 크게 이슈화된 적이 없다. 하나의 사업 형태로서 그들의 수익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초기 DB 구축 단계에서 벌크형 정보사냥꾼들이 영리를 위한 노력을 들였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영리한 사업이었겠지만, 인터넷 유저의 한 사람으로서 검색 페이지를 어지럽히는 이들 레포트 거래 사이트 행위는 말 그대로 정보화 사회의 반달리즘이라 할 수 있겠지.

상황3.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보고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웹 상 도둑질로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들은 또 뭐냐~?(관련글) 이미 블로고스피어 내에서 보고된 사례만 보더라도 언론사 자체가 저작권 강화를 내세우는 논리에 역행하는 거잖아. 문제는 윤리라는 고색창연한 헛소리를 내뱉고 싶다.

상황4.

쓴 소리 내뱉고 난 후,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반성하자~!


Posted by 망명객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자선과 박애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멍청한 믿음이다."
새로운 박애주의자들은 뭔가 차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이들의 노력과 활동은 대부분 변덕스럽고 자의적일 뿐이다. 이들의 괴상야릇한 정치적·종교적 신념이 탑재되어 있는 경우도 잦다. 이들은 자신이 상공업계나 정부와 더불어 큰 호수의 송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부유한 개인에서 정당에 이르는 각종 행위 주체들의 자선과 기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이 시대에 엄청난 부자들이 뒷구멍으로 정치와 우리 문화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자유 재량권을 부여받는다면 이는 얄궂은 일이다.
- 제임스 하킨, 미래 시민 개념 사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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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과잉이 조직을 지배할 때, 자율성이란 정파적 관점에선 도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도구를 바라보는 조직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을 지을 때다. 그을 건 긋고, 맺을 건 맺어라. 상식 선에서 생각하라. 끝까지 믿을 건 스스로의 판단일 뿐. 정치 과잉의 인간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자. 넌 너고, 난 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얼굴로 현혹하지 말라. 내가 바라는 건 그것 뿐이다. 부디 양아치처럼 굴지 말라. 이미 우린 시민사회든 운동권이든 정치 과잉의 양아치들을 너무나 많이 겪지 않았던가. 즐~
Posted by 망명객

냉동삼겹살

이미지 잡담 : 2009/06/28 05:12
마기집 냉동삼겹살


■ 방법론재수강 님의 냉동 삼겹살 포스팅


라면 안주 삼아 소주 빨 수 있는 곳이 마기집이었다. 호주머니 얇은 학생들의 성지. 만원짜리 한 장이면 대충 둘이서 얼근히 취할 수 있는 곳. 오돌뼈가 괜찮은 술집 겸 밥집이었다. 이제 마기집은 부귀식당과 함께 재개발의 명목 아래 옛이름이 돼버렸다.

냉동삼겹살은 마기집의 정점을 이루던 메뉴다. 호기롭게 냉동삼겹살을 주문하던 날이면 늘 주인 할머니는 상추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상추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마기집에 대한 모독이다. 마기집에는 상추가 늘 없었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우리는 주인 할머니에게 김치나 많이 달라는 주문사항을 건네곤 했다. 

냉동삼겹살의 정점 시즌은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름철이다. 호일 위에서 쪼그라들며 익어가는 냉동삼겹살은 잃어버린 부피 만큼의 눈물을 흘렸고, 기름과 만난 수분은 불판을 달구던 불꽃의 크기에 비례해 주변 상 위를 어지럽혔다. 아, 맨 살 드러난 팔다리도 기름 박격포의 사정권 안에 들게 된다.

팔다리 위로 기름 맞으며 마시는 소주는 달다.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기름, 말 그대로 지글거리며 달구어진 호일 위는  정말 소주맛 나는 술자리를 선사한다.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시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붇는, 절절한 아우라가 펼쳐진다. 물론 지글거리는 호일 위는  

마기집이 문을 닫고 정육점식당도 업종을 변경했다. 점점 냉동삼겹살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사라지고 있다.


아직 제일식당이 남아 있다.

방법론 재수강 하시는 형님께선 신규 발굴 아이템을 어여 이 후배에게 알려주시길...
(한방 쏴달란 소리지... 우리 얼굴 본 지도 백만 년 지난 것 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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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무척이나 더운 하루였다. 올 들어 최고 기온을 기록했단다. 방송3사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 대부분이 날씨 소식으로 문을 열었다. 조선왕조의 왕릉 40기가 세계 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소식 역시 주요 뉴스 꼭지였다. 한편 평택에선 쌍용차 사측과 노조 사이에서 화염병과 투석전이 동원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S사와 M사는 현장 중계차를 연결해 사태 경과와 전망을 보도한다.

더위와 유산과 쌍용, 이 세 가지 뉴스 아이템을 다루는 방송 3사의 입장은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메인 뉴스 프로그램의 순서가 이를 극명히 밝혀준다. S사와 M사는 더위-쌍용-유산의 순서로 뉴스를 배열했다. K는 유산-더위-쌍용의 순서다. 난 단 하루치의 뉴스 배열 순서를 지켜봤을 뿐이다.

K사에겐 무덤의 가치가 사람보다 앞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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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여기서 고백하자면, 내게 물 건너 들어온 '팝'이란 장르의 효시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빌리진의 문워크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80년대 초, 지금은 대학생 딸을 둔 이모님의 시범을 따라 제주도 중문 시가지의 어느 다락방에서 난 달 위를 걷고 있었다. 창고이자 미혼의 이모가 사용하던 방에서 뜻 모를 가사에 맞춰 이모와 조카가 달 위를 걸었다. 오로지 "빌리 진~"이란 세음절만이 정확히 내 귓가에 닿았다. (현시대 이모들은 어린 조카에게 슈쥬와 소시를 가르치고 있을 터. 아... 현 시대의 어린 조카들은 시범을 보여줄 이모들이 없어도 알아서 잘들 배운다. 텔레비전을 통해) 참 설탕처럼 달았고 사이다처럼 상큼한 멜로디였다. 골목 다방의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듣던, 쉬이 멀미를 일으키던 그런 노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땅의 백성들이 처음 콜라를 맛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팝송을 본격적으로 귀에 달고 살기 시작한 건, 빌리 진과의 만남 이후 6-7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부터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면서 난 본격적으로 팝송을 듣기 시작했다. 외삼촌이 넘겨준 역대 빌보드 명곡 모음집은 당시 내겐 보물같은 존재였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도 여전히 '빌리진(Billie Jean)'과 '빗 잇(Beat It)'은 명곡이었다. 서울에선 언니오빠들이 '뉴키즈온더블럭'에 열광하다 압사당할 때, 내 귀는 7080에서 멈춰 있었다. 당시 내 손으로 첫구입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한 마이클 재슨의 앨범이 'Dangerous'다. 서태지가 곧 돌풍을 일으켰고, 7080에 멈춰 있던 내 귀도 락(Rock)이란 새로운 장르를 찾아 움직였다. 1999년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이 벌어지던 날, 정말 대단했다. 아~ 공연을 보러 간 건 아니었고, 그저 난 행당동에서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다. 잠실에서 펼쳐진 공연의 함성과 음악이 강 건너 행당동까지 들렸단 소리지.

잦은 성형과 갖은 추문에도 난 그의 꿈이 좋았다. 네버랜드, 늘 젊게 살고자 했던 그는 영원히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을 스타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죽었다. 나이를 잊고 사는 것, 忘命地는 그의 '빌리 진'과 네버랜드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고백한다. 잘 가요, 마이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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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 기말고사가 시작된 지난 15일, 시험 치르러 학교에 들른 용인시 9급 공무원 후배님께서 친히 한방 쏘신다길래 급히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 야외로 나갔습니다.



▲ 종목은 보쌈



▲ 시험 치르느라 늦어진 후배 녀석이 손에 맥주 한 병 들고 나타나더군요. 역시 제 후배 맞습니다. ㅋㅋ



▲ 적당한 날씨에 배까지 부르면 몸이 절로 바닥과 친해지죠. 누가 이 사진을 기말고사 시즌 사진이라 하겠습니까.


늙다리 선배의 식사를 챙기는 후배와 술 챙겨주는 후배, 모두 좋은 녀석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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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출처: Dr John2005 (flickr)

이주민 센터의 컴퓨터 자원봉사자로 전 이주민들과 블로그 놀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획에 의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즉흥적인 교육을 주로 진행하고 있죠. 이주민들의 친구이자 강사로서 교육 내용의 질적 제고를 꾀해야 하는 저는 지금까지 이들이 매체를 만나고 소비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고 핑계댑니다.

띄엄띄엄 진행한 이주민 블로그 놀이가 벌써 2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교육생들의 개인 차와 관심사에 따라 각 블로그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야 하는 시점이죠. 몇몇 친구들은 특정 테마에 맞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귀국 후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한 친구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어 속담을 자국어로 돌려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이주민들의 블로그 운영은 이국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이미지가 대부분입니다.

이주민들의 디지털 기기 수용 행태는 다양합니다. 이는 개인별 디지털 리터러시 차이라고 볼 수 있죠. 국적과 언어가 다양한 이들은 디지털 사진도 직접 출력해 나눠갖습니다.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제 양 팔에는 각종 디지털카메라가 걸려 있기 십상입니다. 웹을 통한 콘텐츠 공유 방법이 낯선 건 이들이 처한 노동환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이 공장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인력들이기 때문이겠죠.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겪은 일들을 기록하려 합니다. 이는 자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스스로의 안녕을 전할 수 있는 또다른 경로이기도 하죠.

교육생 이다

이주민 블로그 놀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또다른 행태는 한국 대중문화 소비입니다. 교육시간에 유튜브나 다음 동영상을 자신의 포스팅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그 결과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에 대한 이주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음악이 한국어 능력 향상을 위한 좋은 텍스트이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으론 대중문화가 감성적 측면에서 이주민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콘텐츠라는 점이겠죠.

자료 창고, 한국생활의 저장, 대중문화 소비를 넘어 이주민 블로그가 가야할 지향점은 소통입니다. 블질을 장려하면서 제가 이주민들에게 꺼내는 이야기는 굳이 한국어 포스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모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히 기록하는 게 블로그라고 강조하죠. 이와 관련해 특정 주제 트랙백 놀이를 진행하려 합니다. 이미 RSS 리더기 교육을 통해 저희 반 친구들은 서로의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메타블로그겠죠.

국내에서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들이 정보 교환용 카페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인터넷 세상에서 국경을 논한다는 게 참 거시기합니다). 카페가 더 큰 광장으로 가기 위해선 전용 메타블로그가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출신국이 다른 경우에는 한국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겠지만, 일천한 에스닉 미디어를 대신할 통로로 메타블로그가 매력적으로 다가서지 않을까요?

아직 국내 이주민 블로그가 활성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블로그가 적절한 수입구조를 창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주민 메타블로그를 운운하는 게 웃기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 블로그 놀이를 진행하고 있는 제 입장에선 이주민 메타블로그가 절실하답니다. 메타블로그 개념을 교육하던 제가 이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메타블로그를 마련하겠노라고 교육생들 앞에서 공언해버렸습니다. 다음세대재단의 <블로그라운지>에서 제공하는 '날개툴'을 이용하면 대충 메타블로그 사이트 하나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합니다.

문제요? 당연히 어려움은 따를 겁니다. 제 허접한 기술력이 가장 큰 난점이죠. 아, 도메인도 사야하고 호스팅 서버도 마련해야 하는구나(이래저래 돈 깨질 소리만~). 또한 자국어로 컴퓨터 이용하는 법을 이주민들에게 가르쳐야 하고, 되도록이면 자신의 의견을 글쓰기로 피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하죠. 그 과정이 블로그 놀이의 시작이자 전부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고 타인과 소통하려는 욕구를 끌어내는 과정이 그 핵심입니다.

메타블로그는 언제 마련하냐고요? 돈과 시간이 허락할 때... 취업 성공 후?(--;;;;;;;;;;;;;;;;; 응~?) 공익 차원에서 누군가 해준다면 더욱 땡큐고요. 미래 사회를 생각할 땐 투자 차원에서라도 참 괜찮은 아이템인데... 지난한 국내 에스닉 미디어의 단초로서 발전할 가능성도 보이고요. 누가 아나요. 6억 아세안 시장을 염두에 둔 국제적 메타블로그가 될지~! 테터앤미디어나 다음이 관심 좀 가져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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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난주 제 블로그에 번역기를 설치했습니다. 몇몇 동료 선생님들께서 문의하시던데, 소스는 여게바라 님의 포스팅 자료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게바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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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연세대, '盧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통보 (프레시안, 20090619)



1997년.

한보청문회 증인 김현철 (출처 : 한겨레21)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90년대의 시작을 알렸던 문민정부가 저물어 가던 해. 연초에 터진 한보 사태는 문민정부의 무능함과 도덕적 불감증을 낯낯이 까발리는 계기였다.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공사로 끊긴 당산철교처럼 정권으로부터 급격히 이반하던 해였다. 급기야 연말엔 국가부도 사태가 터진다.

북한 주체사상의 대부라는 황장엽 씨가 남으로 넘어왔다. 중국에선 등소평이 운명을 달리했으며, 한총련 한양대 사태는 학생운동이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와중에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던, 누군가에겐 선생님이었던 그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 사상'을 펴냈고, 출판가에선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승승장구했다. 영국에선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수상 자리에 오른다. 영국이 중국에게 홍콩을 반환하던 해였다. 어린이들은 '포켓몬스터'에 열광했다. 부천판타스틱 영화제가 시작됐고,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대학가엔 하나둘 피시방이란 게 생겨났다.

대학생들에겐 씨네21이 인기 있는 잡지였으며,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는 상영불가 판정에도 불구하고 대학가 영화동아리들의 상영회 단골 메뉴로 자리 잡는다.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했고, 아... X-JAPAN이 해체를 선언했다. 영화 '접속'이 인기를 얻으며 전도연이란 배우가 급부상했다. 이창동이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해이며, 일본에선 '에반게리온' 극장판과 '원령공주'가 극장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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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11월 21일, 한양대 노천극장에선 '박노해 문화제'가 열렸다. 며칠 전 한양대병원노조의 농성장에 경찰이 난입했던 터

노동자 시인 박노해 (출처 : 한겨레21)

라 학교는 온통 집회판이었다. 올림픽체육관에서 열기로 했던 문화제는 학교 측의 장소 불허로 노천극장으로 옮겨 진행했다. 물론 학교측이 노천극장 사용을 허용한 건 아니었다. 겨울로 다가서던 11월의 노천극장. 그 스산한 계절에 하늘에선 비까지 뿌려주고 있었다. 당연히 경찰은 원천봉쇄로 응수했다. 그래도 개구멍은 있는 법.

안치환과 윤도현의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 가수 리아가 올랐다. 비 내리는 노천극장에 관중들이 함성이 메아리쳤다. 밴드를 학교 밖에 두고 홀로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그녀. 그녀는 '유토피아'를 불렀고 '고정관념'으로 노천극장에 모인 인파들을 달뜨게 만들었다.

더이상 꿈을 가질 수 없는 틀에서 이제 나는 벗어나려 해
굳어진 당신들의 생각이 더는 나를 길들이게 할 순 없기에
늘 하던 대로만 하루를 보내고 예~ 다리를 뻗고 안심을 하지
갇혀진 새장에 너무나 길들여져 무더진줄 모르고 또 따라가겠지                                       (리아 2집 중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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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스타워즈Ⅴ

참, 2009년은 딱 '제국의 역습'이란 제목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해다. 촛불이 거리를 뒤덮던 2008년의 '새로운 희망'을 뒤로 하고,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소녀시대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내 귀엔 타바코쥬스의 노래가 늘 걸려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2009년을 떠올릴 최우선의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연세대가 노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방침을 내렸단다. 12년 전 한양대는 어느 노동자 시인의 석방을 위한 문화제 장소를 불허했지만, 2009년의 연세대는 전직 대통령 추모 문화제를 불허한다. 1997년과 2009년의 기억 사이에는 김영삼과 이명박 만큼의 거리가 있다. 재밌는 건 97년의 한승수는 부총리였지만 2009년의 그는 총리라는 사실이다. 현재 살아있는 노동자 시인과 망자가 된 전직 대통령의 무게감 비교는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연세대 본부 측과 총학 간 공방에서 난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2차 사법시험 때문에 학내 행사를 불허한다는 대학본부 측 답변은 조금 옹색해보인다. 행사 불허와 추진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란 어려울 듯하다.

최악의 상황엔, 12년 전의 한양대처럼 전투경찰들이 연세대를 봉쇄할지도 모른다. 학교의 '시설물 보호' 요청이란 간단한 명목이면 경찰들은 시청광장을 막듯 연대를 막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2009년의 아이콘이 돼버린 망자를 기리는 문화제에서 제국 병사들과 같은 전경들의 출현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거리, 그 사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마디 건낼 듯하다.

"I'm your father"

너무나 슬픈 건 이명박 대통령은 제다이가 아니란 사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예언처럼 다음 차례는 '제다이의 귀환'이다. 짧게는 내년 선거, 길게는 차차기 대선 정도에는 제다이의 귀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이 시대의 요다 선생은 지금쯤 세상을 구할 제다이를 훈련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자. '미륵불'의 환생을 믿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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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면접

길위에서 : 2009/06/19 12:28
서른 해 하고도 조금 더 살아온 동안 면접이란 걸 본 기억이 무척이나 드물다. 내 삶에서 겪은 진학과 취업 관련 면접을 모두 합쳐도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포함하면 양 손가락 10개를 모두 쓸 수 있을까? 어쨌든, 일천한 면접 경험 중, 그것도 근 2년만에 본 면접은 최악이었다.

뭐, 준비 안하고 임한 면접이 어쩔 수 있나.

어쨌든 최근 심각히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노력은 안하나? (응?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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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