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09/08/27 트위터는 신뢰의 공간? - 트위터 미팅 플레이스에 대한 소감 by 망명객
  2. 2009/08/25 명랑한 중년들의 반란 - 트위터 중년 모임 결성 (6) by 망명객
  3. 2009/08/25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의 새학기 by 망명객
  4. 2009/08/24 신화와 극복해야 할 한계 사이에서 - 잘 가세요, 김대중 대통령 by 망명객
  5. 2009/08/21 일 삐노끼오, 풍성한 음악 아쉬운 메시지 전달 by 망명객
  6. 2009/08/20 감자라면 (6) by 망명객
  7. 2009/08/19 지역언론 함께 사는 정책? 과연... (2) by 망명객
  8. 2009/08/19 어른 없는 세상 by 망명객
  9. 2009/08/17 휴가의 기억 by 망명객
  10. 2009/08/11 빗나간 비평의 대상 (2) by 망명객
트위터 공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거 PC통신 시절의 대형 채팅방을 보는 듯하다. '~님'이란 호칭이 남발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트위터 내에서 나누는 대화는 상호 존중과 예의를 지키던 초기 채팅방의 모습 그대로다.(물론 PC통신 채팅방에도 불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난 지금까지 한나라당로봇군단을 제외하곤 그리 분탕질치는 유저들의 행태를 본 적이 없다.)

트위터로 나누던 대화는 구글docs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해 소속감을 지닌 모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유저의 연령대와 정치적 성향이 각 모임의 정체성으로 자리잡는 듯하다. 급기야 금일 오전에는 외로운 청춘남여를 위한 '트위터 미팅 플레이스'도 등장했다. 해당 스프레드 시트에는 신청자들이 자신의 성별과 나이, 자기소개와 이상형을 밝히고 있다. 신청자들 중 일부는 휴대전화, 키와 몸무게까지 공개하고 있다.

자신의 반쪽을 찾고자 하는 자발적 모임에서 개인정보는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는 트위터란 공간에 대한 유저들의 자발적 신뢰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유저들은 트위터란 공간과 타 유저들을 신뢰하는 것일까.


아 놔~ 논문 빨리 쓰라는 지도교수님의 압박이 쏟아지는데, 이번 학기 논문 못 쓰면 이게 다 트위터 탓이다. ㅋㅋ
나도 미팅이나 신청해볼까. --;(쿨럭~)

어쨌든 올 하반기에는 국내에서도 마이크로 블로그 관련 연구물들이 나올 것이란 데 한 표!
- 발 빠른 누군가는 분명 지금쯤 논문 쓰고 있을 게다. OTL

Posted by 망명객

국내 트위터리안(트위터 유저)들의 트위터 활용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피겨 스타 김연아의 트위터 이용 소식이 국내 트위터 이용의 물꼬를 튼 후 블로그 유저들의 시국선언 발표와 DDos 취재 가운데 트위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육회 먹기 모임' 등 트위터리안들의 오프 모임도 활성화되어가는 형국이다.

금일은 국내 트위터리안 사이에 모임 결성 의지가 충만한 하루였다. 이름 하여 'ㅂㅌㅈㅃㅈㄴ' 모임이 그 시초인 듯하다. 이에 반발한 트위터리안들은 '순수 청년'이란 모임을 결성했다. 오전부터 유저들 사이에서 공개 사진이 몇 년 전 사진이네, 현재 모습을 올려야 한다는 둥 가타부타 말들이 많더니, 결국 'ㅂㅌㅈㅃㅈㄴ'이란 모임이 결성되게 됐다. (좀 더 자세한 정황은 @kimstcat님과 @neticus님에게 물어보시라.)

암호와도 같은 'ㅂㅌㅈㅃㅈㄴ'은 모임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세 가지 단어의 조합이다. 'ㅂㅌ', 본래의 형태가 변하여 달라지거나 그런 상태를 의미하며 ‘탈바꿈’으로 순화할 수 있는 단어다.'ㅈㅃ', 왼쪽 날개를 일컫는 말로, 주로 그 반대편에 선 자들이 경멸의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다. 'ㅈㄴ', 중년으로, 구성원들의 생물학적 나이를 상징한다. 결국 이 모임은 정치적 정체성과 생물학적 세대의 교집합으로 볼 수 있다. ㅈㅃ중년 모임과 순수청년 모임은 공개된 구글 문서도구를 이용해 회원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해쉬태그를 이용한 중년 모임도 결성됐다. '#nicemiddle'이란 모임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트위터리안 오프모임 공지용 문서를 기반으로 전용 블로그까지 개설한 뒤  다음달 4일 갤러리 '와' 청담전시관에서 '오프더트윗 파티'를 개최할 예정이다. 모임 결성부터 장소 섭외까지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아무래도 ㅈㅃ중년에 비해 오프 모임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하다.

@pariscom님이 '순수청년' 모임을 주도함으로써 중년들과의 구별짓기에 나섰다. 학생보다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많은 국내 트위터계에서 순수청년 모임은 중년 모임에 비해 그 동력이 달리는 편이다. 5시를 5분 앞둔 현재 중년 모임은 약 70명, 순수청년 모임은 약 23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nicemiddle의 파티 참석 신청자는 이미 50여 명이 넘은 상황이다.

업무로 인해 모임 문만 열어두고 나가신 @pariscom님의 순수청년에 비해 중년 모임은 활기가 넘쳐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배우 이영애 씨의 급작스런 비밀결혼 소식에 장탄식하는 중년들이 늘었기 때문.

앞으로 국내 트위터리안들의 모임은 더욱 늘어날 듯싶다. 그렇지 않아도 재잘거림의 세계인 트윗계에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한 이들이 술 한잔 앞에 두고 마주한다면 그보다 더 할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미중년이든 ㅈㅃ중년이든, 난 당분간 이 귀여운 중년들의 행보를 지켜보고자 한다. 물론 본인은 '순수청년' 모임에 가입했다. (누군가 돌 던지면서 중년 모임으로 가라고 할 것 같지만, 누가 뭐래도 난 아직 중년이 아니다.ㅋ"

방법론 시간에 배운 에스노그라피(민속지학)란 이럴 때 써먹어야 하는 게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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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3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지하 한국어교실 접수장

지난 23일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에선 오는 9월 6일 한국어·컴퓨터교실 개강을 앞두고 신입생 접수 행사가 열렸습니다. 본격적인 2학기가 시작된 것이죠. 신입생이나 재학생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이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학기에도 전 이주민 학생들에게 워드2003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전문적인 교육이 아니고 컴퓨터 활용능력 향상 측면의 교육이기에 그리 부담스러운 활동은 아니죠. 지난 학기에 저희 반은 워드 교육과 함께 블로그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방학 중 저희 학생들의 블로그는 잠정 휴면 상태더군요. 아무래도 이번 학기에는 Facebook을 활용한 교육 공동체 형성에 주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좁은 교육장과 1시간 반이란 짧은 교육시간이 컴퓨터 교육의 한계입니다. 접수장에서 만난 이주민들은 컴퓨터를 활용해 본국의 가족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한국 입국 전에 아들이 만들어준 이메일 주소라며 메모지를 내보여주는 중국인 아주머니. 그 분도 고국의 아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자 센터 컴퓨터교실을 찾았습니다. 한국어는 이주민들이 이 땅에 살기 위해 필히 익혀야 할 언어입니다. 컴퓨터는 이주민들에게 전화나 서신을 제외한 본국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가장 값이 싼 도구죠.

신입생 접수,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의 2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재밌고 신나는 2학기를 맞이해야죠.


 
Posted by 망명객


몇 달 새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잃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정치적 수사가 지난 10년의 세월을 저주처럼 지워버리는 듯하다.

조부 세대인 김대중 대통령과 아버지 세대인 노무현 대통령의 잇따른 집권은 지난 반 세기의 정치가 외면해왔던 분배의 정치가 이뤄지던 시기였다. 물론 분배의 정치는 제도적 한계 내에서 이뤄진 개혁이었고 그 속도는 더뎠다. 시장의 투명성을 강조한 자유주의적 개혁이었다. 이를 두고 좌파 정책이란 색깔론 공세가 만만치 않았던 건 그만큼 권위주의적 정경언 유착의 고리가 견고했단 걸 의미하겠지.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거리 위 사람들의 표정은 아득했다. 단, 두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표정에는 비교적 큰 차이가 나타났다. 마치 어머니를 잃어버린 듯한 격정이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그보다는 덜한 차분함이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 기간을 메웠다. 거리에서 난 조부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기운을 느꼈다.

정치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그가 내게 남긴 두 가지 감동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92년 정계 은퇴 후 출간한 그의 자서전과 지난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보여준 그의 눈물이다. 노무현의 눈물 못지 않게 김대중의 눈물은 무게감이 컸다. 내겐 그 눈물이 정치적 동반자를 잃은 슬픔의 표현보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으로 읽혔다.

모든 부모세대는 극복 대상이지만 조부세대는 쉬이 신화와 존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대한민국의 기쁨이면서 슬픔이기도 한 사실은 조부 시대에 이뤘어야 할 신화와 부모 세대의 한계가 지난 10년 동안 압축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그게 저들의 '잃어버린 10년'이란 허구적 수사의 실체다.

추모 시민문화제, 김대중 대통령의 인간됨을 되새기며 자신의 모자람을 시인하는 이들을 뒤로 한 채 난 지인과 함께 술잔을 나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에도 '사퇴하지 않는 민중후보'를 주장하던 이들과 함께, 그래도 '창'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씁쓸한 술잔을 나누던 기억이 떠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의 눈물과 노무현 대통령의 눈물이 술잔 위에 아롱진다.

한국사회에서 성인 남성이 대중 앞에 눈물을 보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눈물. 아픔과 슬픔을 느낄 줄 아는 감수성을 지닌 대통령이 있었다는 건 우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잘 가세요, 김대중 대통령. 소주가 참 입에 쓴 날이었다.



Posted by 망명객

국내 뮤지컬 사정에도 어두운 내가 이탈리아 뮤지컬을 관람하게 됐다. '일 삐노끼오'. 좌석에 몸을 구겨넣은 뒤 난 저 먼 기억의 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디즈니 동화 시리즈로 접했던 피노키오의 줄거리를 찾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면 길어지는 코를 지닌 목각인형 이야기의 전개를 기억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 찾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땐 그저 관람객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 편히 먹고 무대 위를 응시하면 된다. 어차피 무대 위 삐노키오가 피노키오 이야기에 관한 내 불완전한 기억을 채울 테니 말이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곧 무대 위는 배우들의 노래와 춤이 가득 들어찬다. 풍성한 음악에 재미를 더한 건 정말 최적화된 세트였다. 마을 광장과 제패토의 집, 서커스장의 안과 밖, 실내와 실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이동 세트는 정말 훌륭했다. 관객을 배려한 배우들의 한국어 애드립은 극에 재미를 더했다. 부모와 함께 극장을 찾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우들의 노래와 춤을 감싼다.

자막과 무대 위를 오고가는 바쁜 시선은 해외 뮤지컬을 관람할 때 필시 감수해야 할 불편이다. 1층 뒤편에 앉아 관람하기에는 무대 양 옆 자막은 너무 작았고 무대 위 자막은 무대와의 사이가 너무 멀었다. 아이들에겐 이국의 언어로 쓰여진 노랫말이 신기하고 재밌었을 것이다. 발랄한 멜로디의 노래와 경쾌한 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 하지만 노랫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자막의 한계가 명확해 보였다.

옛 동화의 기억은 고래 뱃속에서 탈출한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근면, 정직 등 근대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가족애의 가치는 영원해 보인다. 극을 보는 내내 초등학생인 사촌여동생들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이 참 좋아할 만한 무대다.


뱀발.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장면들이 무대 위에 자꾸 겹친다.(응?)
·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의 유쾌한 시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무대.(참, 걔들은 유쾌하게 시끄러워)
· 자막 띄어쓰기에 자꾸 신경 쓰이더라. --;;;; (내 글은 어떻고...)
· 공연 좋은 건 알겠는데, 이거 너무 비싸다. 빈 좌석은 좀 되던데... 불황일까, 아님 구조적 문제가...

Thanks to MSJ




Posted by 망명객

감자라면

이미지 잡담 : 2009/08/20 13:53

지난 휴가 때 득템한 감자라면.
이 녀석은 무농약 국산감자 100%로 만든 면에 국산 표고보섯 함유, 친환경 팜유로 만들어졌다.

소감?
면발이 조금 뻑뻑하단 점 빼곤 괜찮았음.


Posted by 망명객
“지역언론 함께 사는 정책 펼쳐야” (기자협회보, 20090817)

5.31 지자체 선거 당시 각 정당이 배포한 공약집을 살펴보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문화 관련 공약 중 '미디어/통신' 분야 공약에서 지자체 선거 결과로 다룰 수 없는 내용들을 내놨기 때문이었다. 지방선거라면 기초광역단체장과 지역 의회 의원들을 뽑는 선거다. 이런 선거에서 신문자유를 보장하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제도를 개선하며 KBS의 공정성과 공영성을 확보하며 방송위원회 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열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학과 학생회장 선거에 총학생회 선거용 공약을 남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광역단체장들이 모여서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거다. 적어도 총선이나 대선용 공약을 지자체 선거에 내놨으니 한나라당이 웃겨 보일 수밖에...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미디어/통신

▲ 난시청지역 기초생활수급 세대 위성방송/CATV 수신료 전액지원
▲ 신문자유 보장
▲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제도 개선
▲ KBS 공정성/공영성 확보
▲ 음란·패륜방송 처벌
▲ 방송위원회 위원장 임명 과정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
 ▲ 복합상영관의 문화·환경적 관점 운영
▲ 지역공동체라디오 설립과 재정 지원
▲ 공공 무선인터넷 서비스
출처 : 안태호·장문혁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 문화공약 분석>, 지역문화 2007년 봄호 부분 발췌


열린우리당은 당 정책자료집에서 '미디어/통신' 관련 공약을 내놓지도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공약들은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적절한 내용이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당시 공약들은 정치적 맥락에 닿아 있다. 매스미디어를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색맹이 지자체 선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셈이다.

단지 지난 지자체 선거의 공약만으로도 한나라당의 미디어 시각이 중앙 매스미디어 중심이란 걸 알 수 있다. 여기에 지역언론이 숨 쉴 공간이나 지역언론을 배려하는 자세는 없단 사실이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로 중앙의 유력 신문사들에겐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결국 지역언론은 고사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직면했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밥그릇의 박탈 앞에선 독해질 수밖에 없다. 언론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자체 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과연 정부와 한나라당은 무엇으로 지역언론사를 달랠 것인가. 성 난 지역언론의 도움 없이 지자체 선거를 정면 돌파하긴 어렵다. 정부와 여당이 지역언론사에게 적당한 타협안을 제시하겠지만 이는 영원한 미봉책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떡밥을 물 지역언론사가 나올 것이다. 지역언론사 간 연대는 그 때 깨질 것이다.

이런 글을 쓰게 돼 내심 지역언론인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부디 지역언론사들이 연대의 끈을 강화하길 바란다. 당신들의 힘은 지자체 선거를 둘러싼 공동체의 여론에 달렸다.



Posted by 망명객

어른 없는 세상

똥침 : 2009/08/19 12:50
조갑제, 홈피에 故김대중 전대통령 비난 글 올려 (경향닷컴, 20090818)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하는 가운데 조갑제 선생께선 고인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역시 대기자는 다르다. 팩트에 대한 그의 열정도 이해하고 그의 반골에 가까운 비판의식도 높이 사지만, 결국 인간으로서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까지 냉정한 그의 글은 그리 옳지 못하다. 모두가 "예"를 외칠 때 홀로 "아니오"라 소리치는 건 젊음의 패기라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대기자 출신의 어르신께서 그리 외치기엔 너무 옹졸해 보일 뿐이다. 본인께선 그게 저널리즘이요 기자정신이라 할 수도 있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아온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 그게 노기자가 기자이기 이전에 갖춰야 할 인간으로서의 덕목이다.

존경할 만한 어른의 부재.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슬픔이다.


뱀발.
글을 쓰고 보니 혹이 조 선생께서 허본좌를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ㅋ
어른이 없다는 건, 무너진 부성에 대한 희구가 아니라 무너진 부성이 희화화 되는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갑갑증에 꺼내보는 소리다.

Posted by 망명객

휴가의 기억

길위에서 : 2009/08/17 11:26


잘려나간 반도의 여름은 뜨겁다. 피서지를 찾아 오랜만에 이용한 경춘선 열차는 여전히 청춘의 꿈과 사랑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타인들이 빚어낸 꿈과 사랑에 무임승차하며 달려간 곳은 가평. 역전에서 다시 승합차를 얻어타고 들어간 곳이 북면에 위치한 어느 계곡변이었다. 경기도 북서지역 변경, 일행이 짧게나마 더위를 피해 달려온 곳이다.

두 눈을 찌르는 주변 산하의 초록이 내리쬐는 태양볕을 피할 그늘을 제공해준다. 폭염에 휩싸인 대지 곁으로 힘차게 달음질치는 계곡물의 굉음이 청량하다. 적당한 끼니와 적절한 음주 후 낮잠을 즐기던 일행 사이에서 난 어느 처사의 관념이 빚어낸 여행 수기를 펼친다. 이 여름, 지상에 묶인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로 보내는 몇 시간이 너무나 달콤하다.

8월 중순, 사방의 진초록은 태양볕에 달궈져 태생적으로 간직했던 흙의 색을 곧 내비칠 태세다. 이제 그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래줄 위에 나란히 자리한 잠자리들은 한 여름의 폭염을 기억한 채 가을을 맞이하겠지. 2박 3일, 이 찰나의 이미지들은 회색의 도시에서 성마른 그리움으로 날 괴롭힐 것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그리움을 그리움만으로 삭힐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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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준의 미디어 비평] 하회마을서 떠오른 미디어법 해법 (20090806, 한국일보)

‘미디어 비평’을 비평한다 (20090810, 미디어오늘)

 

김창룡 교수가 미디어오늘 지면을 빌어 한국일보에 실린 강남준 교수의 미디어 비평을 비판했다. 양쪽 모두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양비론적 평가를 내리는 게 속 편한 맺음일 터. 하지만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 원딩으로서 난 감히 김 교수의 메타비평(?)은 빗나간 비평이라 평하고자 한다. 원인은 PD 출신 교수와 기자 출신 교수의 '미디어 비평' 글쓰기에 대한 시각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강 교수와 김 교수가 상정한 비평의 대상의 차가 크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강 교수의 비평문에 대해 ‘정말 정신이 좀 이상해져 만든 칼럼’이라 혹평했다. 글쎄. 나는 강 교수가 미디어법 파동을 둘러싼 일련의 정치적 대립 과정을 좀 눅여보자는 취지로 글을 쓴 것이라고 본다. 강 교수는 이미 같은 지면에서 미디어 난개발을 비판하는 '디지털미디어 절망가'를 발표했다. 뉴스를 다루는 저널리즘보다 저널리즘을 담는 미디어란 그릇 자체가 강 교수의 관심 영역인 것이다. 혹여나 김 교수가 미디어 자체를 저널리즘과 같은 용어로 보고 있다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될 터이지만 말이다. 그게 저널리즘 비평을 주특기로 삼고 있는 김 교수의 입장에선 비평을 가장한 헛소리일 수도 있다.

이는 굳이 강 교수의 지난 비평문까지 들먹이며 꺼낼 이야기도 아니다. 여야 합의 하에 만들어진 미디어위원회의 파행은 정파적 이해 관계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이미 불 보듯 뻔히 예견된 행보였다. 커뮤니케이션 정책 영역이 공익론과 산업론의 일대 격돌장이었던 사실만 복기해봐도 미디어위원회의 파행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결론이다. 미디어 기술 발전 국면에서 미디어위원회는 공익론과 산업론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재설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위원회의 활동은 법 개정이란 결과를 미리 상정해 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변화한 매체 환경 속에서 공익론과 산업론의 재설정보다는 미디어 환경 주변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이해타산의 장이었던 점이 미디어위원회 파행의 진실일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관조가 강 교수 비평문의 요지란 게 내 독해다.

 

미디어 비평은 정보와 오보를 1차적으로 걸러주는 게이트키핑(gatekeeping) 역할이어야 한다는 김 교수의 의견에 난 적극 동의한다. 해당 전문가가 쭉정이와 알맹이를 적절히 골라줘야 한다. 그렇다면 쭉정이와 알맹이를 함께 키워낸 밭에 대한 평가도 미디어 비평의 영역이어야 한다. 강 교수는 공익론보다 산업론의 시각에서 미디어법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강 교수가 한나라당의 개정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양 편이 서로를 향해 날 선 공방을 계속할 때 강 교수는 이 열기를 눅이고 조금 멀리서 미디어판을 바라보자고 비평문에서 주장한 것이다.

 

실명 비판을 가한 김 교수의 의도는 좋았지만 결국 그의 글은 비평 대상인 강 교수의 비평을 심하게 비틀었다는 게 내 최종 결론이다. 강 교수의 비평 코너 지면이 조중동도 아니고 한국일보라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 싸움에 애들은 그저 눈 감고 못들은 척 하는 게 최고라지만 어느 술자리에선가 분명 안주거리로 나올 이야기이기에 개인적인 입장 정리를 해보는 바이다.

 

한 마디 더 사족을 붙이자면, 난 강 교수와 김 교수 두 분 모두 좋아한다. ㅋㅋ 물론 이 모자란 원딩에 대한 가르침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망명객